꼬리표
꼬리표
나는 누구인가? 나 자신은 어떤 말로 표현하는가?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 붙인 꼬리표나 내가 스스로 붙이고 다닌 꼬리표와 전혀 관련이 없는 참신하고 멋스러운 꼬리표를 생각해 보라. 하도 써서 닳고 닳은 넌더리나는 꼬리표들 때문에 인생을 알차게 살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배움에 대해 멀린(Merlin:아서왕을 보좌한 뛰어난 능력을 지닌 마법사)이 한말을 기억하라
멀린은 헐떡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슬픔의 가장 좋은 처방은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다. 결코 어긋날 일이 없는 것은 오직 배움 뿐이다.
사람은 노쇠해져서 쭈글쭈글 해진 채 사지가 후들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밤에 홀로 깨어 흐트러진 맥박소리를 들으며 뒤척일 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사악한 미치광이들의 손에 피폐해져가는 것을 지켜보고 자신의 명예가 버러지 같은 얄팍한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때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배움뿐이다.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는지를 배워라. 오로지 배움 만이 정신력을 지치지 않게 하고 소외시키거나 괴롭히지 않으며 두렵게 하거나 불신 하거나 꿈에서도 후회하지 않게 한다. 배움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자, 배워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가 배움이 이 세상 유일의 순수함이 있다.
일생에 걸쳐 천문학을 삼생에 걸쳐 자연사를 육생에 걸쳐 문학을 배울 수도 있다. 그렇게 백만생을 바쳐 생물학, 의학, 이론 비평학, 지리, 역사, 경제학을 배운 뒤 적합한 목재로 마차의 바퀴를 제작할 수 있고 50년을 더 쏟아 펜싱에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그런 뒤 다시 한번 수학 공부를 시작했다가 농사짓는 법을 배울 시기를 맞이해도 좋지 않겠는가.”
나의 성장을 방해하는 꼬리표들은 몰아내야 할 악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라도 그런 꼬리표를 달아야겠거든 이런 꼬리표는 어떤가?
“나는 꼬리표를 떼는 사람이다.”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드는 꼬리표가 아닌가.
................행복한 이기주의자 중에서
지나간 우리들의 이야기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동네 아이들은 냇가에 나가 개헤엄도 치며 물놀이를 한다.
그런데 개울이란 더러는 장맛비에 움푹 패여 나가기도 하고 둑을 쌓아 놓은 곳이 터져 나가기도 한다. 안성천이 범람해서 둑이 터진 것을 보니 어릴 적에 개울가에서 놀던 생각이 난다. 개울이란 비가 쏟아지면 강처럼 넓은 폭을 유지 하고 흐르지만 비가 개이고 물이 빠지고 나면 급작이 폭이 좁아진다. 서울의 중량천이나 정능천, 안양천, 청계천 모두가 같은 특성을 지닌 천들이 아닌가? 한때는 서울 청량리 밖 위생병원을 지나 중량천 철다리 밑에 가서 미역도 감고 민물고기도 잡고 놀던 일이며 정능천이 범람해서 미아리 다리 밑에서 시신을 찾아 헤매는 가족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일이며, 서울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린다는 뚝섬(현 성수동)벌의 배추밭을 지나 뚝섬유원지에서 보트를 타고 물놀이 하던 일들이 이제는 추억이 되여 버렸다.
여름철에 농부들은 수박이며 참외를 밭에 심는다.
지금은 대부분 비닐하우스에서 여름 과일 농사를 짓지만 가난한 60년대 만 해도 하우스 농사를 할 줄 몰랐다. 그저 태양이 쏟아지는 밭에서 노지로 키운 수박이며 참외다. 봄철부터 밭에다가 사각형 기름 먹인 종이로 고깔을 만들어 덮어씌우고 싹이 트면 종이를 뚫고 구멍을 내고 작물이 추위를 이기고 자라나면 고깔을 벗겨 내서 키운다. 이제는 포트에 작물을 심어 키운 다음에 이식하면 그만이다.
농사 기법이 보다 간편하고 힘이 들지 않는 방법으로 바뀌고 있다 .농사를 지을 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김매기와 풀 뽑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이 문제도 이제는 거의 해결이 되가는 느낌이다. 처음 농사꾼 꼬리표를 달고 시골에 내려와 보니 유휴지에 개망초만 피어 보기가 늘 그러 했는데 올해는 시내에 사시는 분이 땅을 빌렸는지 봄부터 제초제를 치고 그곳에다가 호박을 심었는데 호박넝쿨이 우거져 밭을 뒤덮고 있다.
농사꾼 이란 꼬리표
자신이 만들어 붙인 꼬리표 일까?
시골에 내려와 살면 그냥 붙는 꼬리표다.
남들이 불러 주는 이름표다
어느 분의 노래는 이름표를 붙여 내 가슴에 확실한 도장을 찍어 붙이자고 하지만 농사꾼 하고 이름표를 붙이면 그 앞에 어떤 말을 붙여도 별 볼일 없는 이름이 아닌가?
처음 고등학교에 입학을 해서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들어 야 했다. 학교 운동장에 모여 일제식 훈시를 듣는다. 운동장에는 하얀 강대상이 마련 되여 있고 양쪽으로 담임선생들이 나와 줄을 서면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시작된다.
여러분은 이제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일생동안 따라다니는 꼬리표를 엉덩이 뒤에 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마에 붙이고 다녀야 합니다. 그러니 언제나 모자에 붙어있는 배지를 번쩍 번쩍 빛나게 닦고 다녀야 합니다.
그 후 학생들은 달고 다니는 배지를 광약을 발라 번쩍 번쩍 하게 닦고 모자챙도 비행기 기장처럼 짧게 접어 넣고 다니면서 폼을 잡았던 웃지 못 할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요 잠시 뒤돌아보면
우리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느 학교 출신이라는 꼬리표
서울에서 춘천을 행해 달려가는 기차 안에서 어느 신사분과의 대화다.
어느 고등학교 나오셨어요? XX 고등학교입니다
그래! 나도 거기 나왔는데 몇회 입니까? 15회입니다. 그래 내가 4회이니까 11년 대 선배지 우리가 부산 피난 시절에 졸업이라고 했으니 참으로 다행이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꼬리표 하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지 ...
피난시절에 얻은 꼬리표
그 꼬리표가 자기 일생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지 모른다고 그는 힘주어 말을 하면서 취직을 하려면 춘천 소양로에 있는 자기 집으로 오라고 주소를 적어 준다.
소화물에 붙어 있는 꼬리표 같은 쪽지에 적혀 있는 주소를 들고 어느 날 다니던 대학을 휴학을 할까 하고 찾아 나서게 되였던 “나”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춘천에 내려 꼬리표 같은 쪽지를 들고 물어물어 찾아 갔던 곳 그곳에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문을 두드리니 주인아주머니가 나오신다.
XX 분을 찾아뵈려고 왔는데요.
아주머니는 그분은 이곳에서 하숙을 하셨는데
집을 나가신지가 벌써 한달이 넘었습니다.
허는 수 없이 주소라는 꼬리표를 들고 갔지만 되돌아서야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뭐라 표현 할 길이 없었지요.
해저 문 소양강에 황혼이 오면
외기러기 한 마리가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양이 아닐까?
당시는 대학교 학비를 집에서 타내기가 어려운 시절이라 취직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선배를 못 만난 것도 행운 이 아닐까?
만났더라면 어려운 세상살이에 힘들어했을 것이라는 라는 생각이 드니 하는 말이다.
꼬리표 잘 달고 다니세요.
인생은 갈고 닦는다고 말처럼
갈고 닦고 문지르고 해서 광을 번쩍 번쩍 하게 달고 다니세요.
그걸 보고 귀인이 찾아올지 모르니까요.
.....................충주거멍골 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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