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상) 삼기 방향에서 바라본 미륵산
(상) 미륵사지 유물 전시관
(상) 미륵사지 석탑 정비보수사업 현장
(상) 당간지주(보물 제236호)
미륵산 남쪽 너른 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절터인 미륵사터가 있다.
서동과 선화공주 얘기로 잘 알려진 서동인 백제 무왕 때 창건되어
고려 때까지도 성황을 이루었으나 조선 중기 이후 폐찰된 것으로
알려진 사찰이라 한다.
미륵사지석탑(국보 제 11호)은 2001년부터 현재까지
보수정비사업 시행되고 있는 중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 장중한 탑을 대했었다.
개구쟁이였던 나와 친구애들은 그곳에 도착하면 탑 내부에 들어가곤 했다.
동쪽 방향으로 진입해 우린 서쪽이나 남쪽으로 때론 북쪽으로 내달리며
숨바꼭질을 하곤했었다. 관리 소홀 탓도 있었지만,
문화재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그러한 행동이 나타난 것이었다
현재 이곳엔 1993년 복원된 동석탑, 당간지주 두기, 목탑터, 금당터 세곳,
회랑과 강당과 승방의 자취, 그리고 남문과 중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석등 지붕돌, 연꽃잎이 새겨진 석등 받침, 이외에도 용도를
알 수 없는 여러 석물 부재들이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옛 영화를
추억인 양 간직한 채 흩어져 있다.
(하) 미륵사지에서 바라본 미륵산(용화산)
(하) 미륵사지 연못
(하) 새로 조성된 동석탑 모습
(하) 건물 초석

"백제 30대 무왕이 왕비와 함께 용화산(미륵산)에 있는 사자사로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 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여 미륵사를 창건하였다.
또 지명법사의 도움으로 산을 허물어 못을 메우고 금당, 탑, 회랑을 세 곳에
마련한 가람(절)을 조성하였는데 신라 진평왕이 백공을 보내어 도와주었다"
라고 기록 되어 있다 한다.
미륵사는 창건 당시 건축, 공예, 등 백제의 문화 역량이 최대한 발휘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라 등 삼국의 기술이 결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륵사의 창건은 이곳 금마에 가람을 조성하여 마한 세력을 아우르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을 것이고, 황룡사로 대표되는 신라 화엄신앙에
대비되는 백제 미륵신앙에 바탕한 것이라 한다.
(하) 강당지 석축
(하) 석등하대석(전북지정문화재 자료 제143호)
(하) 미륵사지 석탑 보수현장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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