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2003) - 감히 '최고'라 하고 싶은 한국멜로영화
지혜(손예진 분)는 집안을 정리하다가 우연찮게 엄마가 모아둔 편지함에서 예전에 엄마가 모아둔 편지와 일기를 읽게 되고 영화는 편지와 일기 속의 엄마의 옛이야기로 전개된다.
손예진의 1인 2역의 연기로 지혜의 어머니 역할인 주희 역시 손예진이 연기하는데, 주희는 할아버지댁이 시골(정확한 지명은 나오지 않음)이었고 할아버지댁도 있고 해서, 수원에서 잠시 시골로 오게 되는데 오는 길에 역시나 수원에서 전학 온 준하(조승우 분)와 첫만남을 가지게 된다. 누구나 인정할 외모이니만큼, 영화속에서도 아주 '예쁜' 캐릭터로 나오는데 준하는 첫눈에 주희에게 반하게 되고 주희 역시 준하에게 호감을 가진다. 공주처럼 자란 주희가 도시에서 전학 온 시골청년이나 다를 바 없는 준하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귀하디 귀하게 도시에서 자라난 국회의원의 딸이 시골에서 잠시나마 일탈을 가지게 되고 그 배경에 준하가 있었기에 자신에겐 처음이면서도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며, 충분히 호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클래식'의 고전적인 특성이 아주 잘 드러나는 부분인데, 시골에서 온 귀하게 자란 도시 처녀와 시골 청년이 우연찮게 만나, 둘만의 잊지 못할 에피소드로 정이 들게 되는 장면이다. 멜로영화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우연성과 정형화된 캐릭터는 조승우와 손예진의 순하디 순한 연기로 아름답게 가꿔진다. 주희는 '귀신이 있는 집'을 가자고 준하에게 제안하고 첫눈에 반한 준하는 당연히 동의하며, 둘은 배를 타고 강가 건너있는 그 집을 체험하고, 폭우로 인해 배가 떠밀려가 비를 피해 오두막에서 수박을 먹으며, 뛰다가 다리를 다친 주희를 업고서 나루터로 밤늦게 가서 하루가 꼬박 흐르고서야 다시 돌아오게 된다. 주희는 고마움의 표시로 준하에게 자신의 목걸이를 선물하며 이 목걸이는 '클래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된다. 고등학생의 나이에서의 소녀와 소년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갖게 된 잊을 수 없는 둘만의 하루동안의 에피소드, 이 정도면 아무리 우연이라도 충분히 정들 수 있는 이야기라고 본다. 국회의원의 귀한 딸이라, 역시나 준하는 주희의 할아버지에게 뺨을 맞으며 강한 거부반응을 받는데 마치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같았던 기억.
주연은 조승우, 손예진, 조인성 등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영화의 조인성 이상의 역할을 부여받은 캐릭터는 태수 역의 이기우다. 그의 훤칠한 키와 인상적인 연기는 매우 커다란 기대를 갖게 한 배우였으나, 생각보다 이 배우 잘 나오지 않는 듯. 태수 역시 귀한 집안의 자식이며 태수와 주희는 아버지끼리 약속해놓은 약혼으로 맺어진 사이이다. 영화에서 '주희가 공화당 집안의 딸이다' 이런 배경이 나오는데 뭔지도 잘 모르겠고 별반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그저, '시기적으로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였고 옛날 시대에 귀한 집 자손끼리 정략적으로 관계를 맺으려 했다.' 이 정도로만 인지하고 있으면 보는 데 아무 문제 없을 듯. 태수와 준하는 둘도 없는 아주 친한 친구 사이인데, 영화의 특별함은 개인적으로 태수의 역할에서 나온다고 생각이 든다. 아주 전형적인 멜로영화의 공식대로라면 태수는 준하와 주희 사이를 방해하는 반동인물이었어야 할텐데 태수는 아주 아주 착하게 그려진다. 여기서 '클래식'의 특별함이 나오는 것 같다.

주희는 준하와의 하루의 에피소드를 뒤로 한 채, 다시 올라가게 되나 태수와 약혼한 사이이기 때문에 태수를 통해 준하와 계속적으로 만남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주희의 위치가 명확히 나오진 않지만, 아마도 태수 때문에 준하와 그리 멀리 있는 곳은 아니었던 듯. 태수와 주희가 약혼한 사이기 때문에 태수는 주희와 계속해서 연락을 할 수 있게 되고 덩달아 태수의 친구인 준하 역시 주희를 자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주희의 연주회에 준하가 참석하고 포크댄스를 배우는 자리에 태수를 통해 자연스레 함께 가게 되어 주희와 준하만의 에피소드가 쌓이게 된다.


포토샵을 쓰지 않는 원초적인 포스팅은 상당히 제한적이다.ㅠ 스틸샷을 벌써 이걸로 해야 하다니... 중간에 아주 결정적인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준하와 주희와의 만남이 갈등을 이루는 부분이다. 6,70년대의 시대적 배경이 그 갈등을 수긍할 수 있게 하는데 일단 '클래식'의 배경이 아주 클래식한 6,70년대임을 고려해볼 때 그들의 갈등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요즘처럼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좋아하는 사람과 이루어질 수 있는 배경이 아닌 보다 엄하고 보다 폐쇄적이었던 그 때의 부모님의 반대에 의한 갈등은 준하와 주희에게 커다란 장애요소일 수 있다. 더욱이, 준하에게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인 태수의 약혼녀이니 갈등은 더할 수 밖에. 부모님에 의해 맺어진 태수와 주희의 관계 탓에 준하와 주희는 갈등을 겪게 되나 영화의 특별함은 앞서도 말했듯이, 태수에 의해 그 진면목을 발휘한다. 준하는 태수에게 주희와의 관계를 고백하나, 태수는 그런 준하의 마음을 이해하고 준하처럼 주희를 좋아하고 있었던 태수였지만 준하와 주희의 관계를 태수는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응원해준다. 태수의 이름으로 주희에게 편지를 보내는 척 해서, 준하와 주희의 편지를 통한 소통을 계속 이어가게 해주며 태수는 그들의 관계를 인정하나 태수의 주소로 보낸 주희에게의 편지가 태수네 집에 반송되는 일이 발생함으로, 태수의 옹호는 부모님에게 발각되어 태수는 아버지에 무참히 얻어맞는다. 보통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이렇게 태수가 얻어맞아 준하와 주희의 관계를 갈라놓는 게 정석인데 태수는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리려 한다. 여러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자신이 죽음으로 준하와 주희를 잇게 해주려는 살신성인의 태도일 수도 있고-약간 과장인 거 같긴 하다.-, 부모님의 그런 등쌀에 못이겨 그냥 자신이 죽으면 다 되겠지 하는 생각에 저지른 일일 수도 있고...... 아무튼 태수의 자살기도는 준하와 주희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태도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악역 없는 멜로영화의 삼각관계는 생각보다 찾아보기 힘든데 태수를 통해 영화는 확실히 특별해진다. 그러한 태수의 자살기도에, 준하는 더이상 주희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하고 눈물을 머금고 태수의 병실에서 주희와 마지막 인사를 고하며 목걸이만을 남기고 떠난다. 이 장면, 상당히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준하와 주희는 연락이 끊기게 되고, 주희는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데모운동을 벌이다가 우연찮게 태수와 마주치게 된다. 태수를 통해 준하의 소식을 접한 주희는 준하가 월남전 파병을 하게 됨을 알게 되고 그가 파병 차 기차를 탄 자리에서 그와 감격의 재회를 하게 되지만 준하와 주희는 그렇게 잠깐의 눈마주침만 한 채, 또다시 헤어지게 된다. 월남전에서 준하는 아무 이상없이 돌아올 수 있음을 암시하나, 전투 중 목걸이를 잃어버려 그 목걸이를 다시 찾고 후퇴하려는 바람에 부상을 입게 되고 그 부상은 실명의 아픔을 준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라 생각하는데, 실명한 준하 그리고 주희의 전쟁 후에 갖게 되는 재회의 에피소드다. 어떻게 보면, '클래식'의 반전스러운(?) 효과를 준 감동의 장면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철없이 보았던 옛날, 준하가 실명인지를 주희처럼 까마득히 모르고 봤을 때 소름돋게 슬펐던 기억이 난다. 그가 실명했음을 알고 다시 봐도 이 장면은 정말 엄청나게 감동적이다. 감상자에 따라 그 감동의 정도는 얼마든지 다르겠지만, 주희가 준 목걸이가 준하에게 주는 특별함을 생각해본다면 그 목걸이 때문에 실명까지 한 준하의 상황은 눈시울이 적게 하기에 충분했다. 실명인지 모르고 보건 알고 보건 조승우의 연기는 끝내줬다.
그렇게 둘은 눈물의 재회를 마치고 서로의 길을 가게 된다. 원체의 배경자체도 부모님 때문에 이루어지기 힘들고, 태수까지 자살시도를 하는 사건을 겪었으며 거기에 실명까지 한 준하와 주희가 감격적인 재회를 해서 이루어지는 건 솔직히 억지다. 영화는 어떻게 보면 주희 때문에 자신의 눈까지 잃은 준하의 주희에 대한 진실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작 이루려면 얼마든지 이루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준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실명까지 한 상황에서 서로의 감정만을 앞세워 주희를 사랑하기엔 스스로 아니라 판단했을테고, 진정 주희를 사랑하기에 주희의 보다 더한 미래를 위해 놓아주었다고 보아야 할 듯 하다. 그래서 주희와의 재회 전에, 미리 결혼했음을 알렸던 것일테고. 하지만 그런 준하의 주희에 대한 사랑의 결과는 결국 아들까지 낳은 준하였음에도 주희를 잊지 못해 준하의 죽음을 통해 끝을 맺었으며, 싸늘한 유골이 되어 그들의 사랑의 시작이었던 강가로 돌아오게 된다. 이 마지막 오열의 장면이 다시 봐도 참 아쉬운 부분인데, 아주 조금만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오열의 장면이 영화 '파이란'의 편지를 읽으며 오열하는 최민식의 연기 정도였으면 '클래식'의 감동은 아주 절정을 이루었을텐데 하는 아주 조그만 아쉬움은 있다. 물론 충분히 감동적이었지만, 조금만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정도다. 태클의 무서움.ㅠ
영화를 돌이켜보며, 정작 조인성의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는데 그의 이야기가 낄 틈이 없다.ㅠㅠ 준하와 주희의 에피소드 자체만으로도 워낙에 감동적이고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개인적인 판단 때문인 듯. 상민(조인성 분)은 준하의 그 아들이었다는 반전과 함께 주희의 딸인 지혜를 오래전부터 좋아한 역할인데, 사실 상민과 지혜의 에피소드는 그리 들어오지 않았다. 지혜를 통한 액자식 구성이고 상민과 준하의 연결고리 때문에 지혜와 상민을 등장시킨 것도 다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준하와 주희의 클래식한 배경의 클래식한, 아주 고전적인 로맨스에만 집중하고 싶었던. 영화는 준하와 주희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그 피붙이인 상민과 지혜의 사랑으로 이루며 끝을 맺는데, 마지막에 그 준하의 아들이 상민이었다는 반전(?)이 그리 감동적이진 않다. 약간은 어거지스러운 느낌? 그래도 과거의 준하와 주희 그리고 현재의 상민과 지혜를 이어가고자 하는 전개는 훌륭했다고 생각이 들며 준하와 주희의 못다한 사랑을 지금의 상민과 지혜를 통해 이어가겠다는 희망적인 결말은 준하와 주희의 풋풋했던 첫사랑의 기억을 아름답게 포장해주는 훌륭한 마무리였단 생각이 든다. 한국멜로영화만 해도 부지기수겠지만, 개인적으로 '연애소설'과 함께 감히 최고라고 하고 싶은 '클래식'. 손예진의 그 순하디 순한 캐릭터가 사뭇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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